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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5 18:40

핵전쟁 위기 Internet 을 만들다 

- 한국은 무엇을 만들어 내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스푸트니크 쇼크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1957년 미국은 사거리 6000km 수준의 아틀라스 A 로켓을 발사 성공하였다.


그때 소련이 사정거리 8000km 에 이르는 세계 최초의 ICBM 인 R-7 로켓을 실전에 배치하였다는 선전이 들렸다.  



미국과 서방은 이를 믿지 앉고 무시했지만,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성공적으로 발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써,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엄청난 충격과 공포, 위기감을 받게 되었다.

대륙 간 탄도 미사일 ICBM 기술을 소련이 가장 먼저 보유하게 되면서,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의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공포와 위기감을 주었다.


2017년 9월 북한은 화성 -14형 ICBM 로켓을 확보했으며,

수소폭탄이라고 선전하는 나가사키 핵폭탄 최대 10배 의 핵실험을 단행했다. 

한국, 일본은 물론 서방은 다시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분명히 그때의 위기를 극복해 내었다.

한국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의 유래도 핵전쟁의 위기감에 대한 극복의 과정 속에서 탄생하였다.


인터넷의 역사

1960~ 1970 년대 미국 국방부 산하의 고등 연구국(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 ARPA) 의 연구용 network이 시초이며, 군사용 network 이며  MILNET로 발전되었다.

ARPA는 핵전쟁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network 를 연구하였다.

연구 결과 패킷 교환 방식이 매우 견고하고 생존성이 높았다. 최초의 2 노드간의 상호연결은 1969년 10월 29일 UCLA 와 SRI 연구소 간에 연결되었다. 이 통신망을 ARPANET 이라고 하였으며, 현재의 인터넷망의 시초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

1962년 10월 14일, 미국의  첩보기 록히드 U-2에 의해, 쿠바에서 건설 중이던 소련의 SS-4 준중거리 탄도 미사일(MRBM) 기지의 사진과, 건설 현장으로 부품을 운반하던 선박의 사진이 촬영되었다. 


소련의 흐루쇼프는 미국에 대해 군사적 우의를 확보하고, 쿠바의 신생 공산 정권인 카스트로 정권을 보호하며, 서방 세계와의 협상 카드로 쓰기 위해 쿠바에 장거리 미사일 기지를 비밀리에 추진하였다.

쿠바는 미국의 플로리다 반도의 끝에서 불과 23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고, 미국은 이 지역에 레이더 조기경계 시스템도 개발되어 있지 않았으며, 42기의 소련의 핵미사일은 미국의 본토를 사정거리에 충분히 둘 수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은 소련의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을 무력시위라고 주장하며, 미사일 기지의 완공을 강행한다면 이를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것이며, 제3차 세계대전도 불사하겠다는 공식성명을 발표하였다. 쿠바의 핵미사일이 서방국가를 공격할 경우 이를 소련의 미국 공격으로 간주하여 소련에 핵보복 조치를 가하겠다는 핵전 불사 입장을 밝혔다. 전 세계가 돌연 핵전쟁의 공포에 휩싸이는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가기에 이르렀다. 


쿠바 해상 봉쇄

1962년 10월 16일 케네디는 국가안보위원회(NSC) 를 소집하였고, 선제타격하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쿠바를 해상봉쇄하는 안을 도출하였다. 10월 22일 케네디는 '미국과 서방세계의 안전을 위해 쿠바에 해상봉쇄를 단행한다'는 것을 발표하였다.  


1962년 10월 24일 미 함정 183척과 전투기 1190대가 2400km 의 카리브 해 봉쇄선에 배치되어 초계기가 발견한 선단의 도착을 기다렸다. 미 당국은 소련 선박이 정지명령 · 검문에 불응할 경우 격침까지 시킬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소련정부는 성명을 발표하며 미국의 봉쇄 · 검문은 국제법을 침해하는 해적행위라고 비난했으며, 핵어뢰를 탑재한 B-59 잠수함과 핵미사일을 싫은 화물선을 쿠바로 출발 시켰다. 세계의 모든 눈이 카리브 해에 쏠렸다. 


1962년 10월 26일 , 소련의 미사일 적재함이 미국의 봉쇄선을 지나다가 저지당했다. 흐루쇼프가 마침내 케네디의 초강경책에 한발 후퇴했다. 26일 소련은 미국에게 쿠바를 절대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28일 미국이 쿠바 불가침을 약속하자 소련은 미사일 기지를 파괴하고 미사일을 철수시켰다.


핵전쟁의 공포 1주일은 미국의 초강경 위력 시위와 쿠바 불가침 약속으로 종결됐다. 쿠바 위기 후 미소 양국은 급속히 접근했고, 군축 교섭도 진전되어 평화 공존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2017년 대한민국과 세계는 생존할 것 인가?, 공멸할 것인가?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강력하고 현명한 선택과 행동, 위기 극복을 위한 최선의 노력만이 다시 평화와 공존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참조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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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훈즈 플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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